스마토라 Smartorah

잘 살고 싶은 보통 사람의 기록

  • 2025. 4. 15.

    by. Ms.한발만

    인왕산

    서울 한복판에도 여전히 조용한 산이 있다.
    높지 않지만 바위 능선에 올라서면, 그 아래로 펼쳐지는 서울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산.
    인왕산은 그런 곳이었다.
    이른 아침, 경복궁역에서 나와 홍지문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더 가벼웠다.
    오늘은 다른 어떤 산보다 짧게, 그러나 더 깊은 여운이 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왕산, 도심 속 바위산의 고요함

    인왕산(仁王山)은 해발 33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하지만 산세는 생각보다 더 ‘산’ 같고, 초보자에게도 도전 의욕을 자극할 만한 바위 능선이 특징이다.
    산 이름의 유래는 불교에서 말하는 수호신인 '인왕(仁王)'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왕도(王道)를 인(仁)으로 다스리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상징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 산은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장소였다.
    북악산, 남산과 함께 한양도성의 주요 방어축이었으며,
    지금도 산의 동쪽과 북쪽 능선을 따라 서울 성곽길이 보존되어 있다.
    그 위를 걷다 보면 단순한 등산로가 아닌,
    시간을 거슬러 걷는 듯한 독특한 기분이 든다.
    인왕산이 단순한 바위산을 넘어선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초보자도 걷기 좋은, 짧고 선명한 능선 코스

     

    인왕산은 전체 코스가 길지 않아 초보자에게도 좋은 산이다.
    대표적인 등산 코스는 사직공원 → 인왕산 정상 → 자하문 방향 하산으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 내외면 왕복이 가능하다.
    사직공원 입구에는 화장실과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 전 준비도 수월하다.

    처음 오르는 길은 흙길과 나무 계단이 이어지며 비교적 편안하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점점 바위 구간이 많아지고,
    능선에 올라서면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올라야 하는 바위턱도 몇 군데 등장한다.
    하지만 위험하진 않다. 길이 좁고 단단한 만큼,
    조금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발을 옮기게 된다.

    정상에 오르면 서울 서쪽 방향이 탁 트인다.
    서대문, 마포, 여의도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동쪽으로는 경복궁과 북악산, 남산, 롯데타워까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높지 않은 산인데 이렇게까지 넓은 조망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인왕산 코스 요약 (초보자용)

    | 출발지 | 사직공원 (경복궁역 1번 출구) | | 도착지 | 자하문 or 사직공원 회귀 | | 거리 | 약 2.5km | | 소요시간 | 왕복 1시간~1시간 30분 | | 난이도 | ★★☆☆☆ (중간 바위구간 주의) | | 특징 | 짧은 거리 / 넓은 조망 / 성곽길 포함 

     

    인왕산 성곽길, 성과 풍경 사이를 걷다

    인왕산 성곽길 성과 풍경 사이를 걷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성곽길을 따라 이어진다.
    서울성곽길은 ‘한양도성 순성길’이라 불리며,
    인왕산 구간은 그 중에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시간이 여유 있다면 자하문 쪽으로 내려가 부암동 카페골목이나 윤동주문학관까지 연계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다.

    특히 노을 질 무렵의 인왕산 성곽길은 서울에서 보기 드문 풍경을 보여준다.
    돌담 위로 주홍빛 하늘이 물들고, 도심 속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아 있던 사람들이 말없이 풍경을 바라본다.
    누구도 급하지 않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 이 여유.
    서울 안에서 이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인왕산의 가장 큰 선물일지 모른다.

     

    인왕산 야경 – 어둠 속 서울의 숨결을 내려다보는 시간

    인왕산 야경 어둠 속 서울의 숨결을 내려다보는 시간
    인왕산 성곽길 야경


    인왕산은 낮에 걷기에도 좋은 산이지만, 해가 지고 나서 진가를 발휘하는 산이기도 하다.
    바위 능선 위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은, 남산이나 안산처럼 널리 알려진 야경 명소만큼이나 아름답다.
    특히 일몰 직후,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부터 어둠이 도시를 덮기까지의 시간은 짧지만 깊다.

    성곽길 위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멀리 남산 타워와 여의도 방향으로까지 시야가 트인다.
    서쪽으로는 은은하게 퍼지는 해 질 녘의 빛이 성곽 위를 감싸고,
    동쪽으로는 점점 뚜렷해지는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지며
    서울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진 도시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야경을 보기 위한 인왕산 산행은 저녁 무렵 출발하면 좋다.
    평일 퇴근 후나 주말 저녁, 약간의 여유를 내어 사직공원 쪽에서 올라
    노을을 보고 잠시 바위에 앉아 있으면, 어느새 도시는 또 다른 색으로 변해 있다.
    성곽길을 따라 자하문 쪽으로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에도
    등 뒤로 계속해서 서울의 야경이 펼쳐지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야간 산행 시에는 작은 손전등이나 헤드랜턴이 있으면 더 안전하며,
    바람이 불 경우를 대비해 가벼운 바람막이나 겉옷을 챙기는 것이 좋다.
    인왕산은 도심과 가까운 만큼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그만큼 조용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서울의 야경을 한층 고요하게 감상하고 싶다면,
    남산이 아닌 인왕산의 바위 위에서 그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야경 감상 팁 요약

    • 최고 포인트: 인왕산 정상 인근 전망석 / 성곽길 바위 능선 위
    • 추천 시간대: 해 질 무렵 ~ 오후 8시 전후
    • 준비물: 휴대용 손전등, 바람막이, 미끄럼 방지 신발
    • 주의사항: 바위길 구간은 해지기 전에 통과, 이후엔 성곽길 이용 권장

     

    인왕산에서 내려와 만나는 서울의 중심, 경복궁과 광화문

    인왕산에서 내려와 만나는 서울의 중심 경복궁과 광화문
    경복궁 야경

     

    인왕산의 또 다른 매력은 단순히 자연을 걷는 산행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산은 서울 도심의 역사와 문화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산 후 자하문길이나 사직공원 쪽으로 내려오면,
    도보 10~15분 이내 거리에 경복궁광화문광장이 이어진다.

    특히 사직공원 방향으로 하산한 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진입하면,
    바로 광화문 앞 열린광장과 연결되는데,
    이 길은 ‘산에서 궁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요한 산길을 내려와, 이내 조선의 정궁을 마주하게 되는 이 흐름은
    서울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동선이다.

    광화문광장을 지나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에서 도시로, 다시 역사로 연결되는 이 특별한 산책이 완성된다.
    날씨가 좋은 날이라면 경복궁에 잠시 들러 정전 앞마당을 걷거나,
    근처 국립고궁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도서관
    문화 시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특히 경복궁 야간 개장 기간과 인왕산의 노을 타임이 겹친다면,
    도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 역사 + 야경의 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인왕산은 그 자체로도 멋진 산이지만,
    그 이후의 동선까지 고려했을 때 더욱 가치 있는 목적지다.

     

    인왕산 → 경복궁 & 광화문 추천 동선

    인왕산 사직공원 하산 가장 일반적인 경로, 도보 10분 내 경복궁역 진입 가능
    자하문 하산 후 통인시장 경유 전통시장 → 경복궁 서문 진입 코스로도 연계 가능
    경복궁 야간개장 시즌(봄/가을) 인왕산 노을 후 → 야간 궁궐 관람까지 이어지면 최고의 루트

     

    도심에서 가장 단단한 산을 만나는 시간

    인왕산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오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얻는 감정과 풍경은 아주 크다.
    흙길, 바위길, 성곽, 서울 전경, 그리고 고요한 산길.
    하나하나가 짧지만 깊게 남는다.

     

    서울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걷고, 나만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등산 초보자가 ‘첫 바위산’을 경험해보고 싶을 때.
    그리고 일상의 소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인왕산은 그저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그냥, 한 발만 옮기면 된다.